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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66

『교토 커피』 – 느림을 마시는 법, 혹은 삶을 다시 추출하는 법 커피는 마시는 것이라기보다, 살아내는 것에 가깝다. 특히 교토에서의 커피라면 더더욱 그렇다. 심재범 작가의 『교토 커피』를 읽으며 나는 단순한 커피의 향을 넘어선 어떤 철학, 삶의 태도, 그리고 사색의 결을 느꼈다. 이 책은 결코 커피에 관한 책만이 아니다. 여행기도 아니고, 단순한 에세이도 아니다. 이것은 삶을 천천히 바라보는 연습, 혹은 한 잔의 커피에 세계를 담아내려는 시도에 가깝다.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다 보면 묘하게 조용해진다. 마치 교토의 골목을 걷는 듯한 착각, 아니 그곳의 시간 위에 잠시 발을 들인 듯한 착각 속에서 독자는 점점 느려진다. 시끄럽고 복잡한 카페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단 하나의 여백이 이 책엔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여백이 『교토 커피』의 본질이다.교토 커피, 느림을.. 2025. 4. 10.
『햄릿』 – "죽느냐, 사느냐",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이야기하며 이 문장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 유명해서 진부해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 문장은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을 품고 있다. 삶과 죽음 사이, 행동과 망설임 사이, 선과 악 사이. 햄릿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의심하고, 고뇌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끝내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왜일까? 나는 이 질문에 오래 머물렀고, 그 결과 『햄릿』이라는 작품이 단지 고전 비극이 아닌, 인간 실존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문학적 탐구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햄릿 "죽느냐, 사느냐",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햄릿』은 표면적으로는 복수극이다. 덴마크의 왕.. 2025. 4. 10.
『키다리 아저씨』 – 마음을 키우는 편지, 자유로 가는 소녀의 여정 세상에는 ‘편지’로 이루어진 소설이 있다. 이야기의 구조가 튼튼하지 않아도,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도, 그 안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성장과 고백을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유쾌한 말장난과 위트, 때로는 뾰족한 진심이 묻어난 편지들이, ‘제루샤 애벗’이라는 한 소녀의 삶과 그 안의 인간적인 떨림을 가감 없이 전해준다.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나는 그냥 ‘귀엽고 따뜻한 이야기겠지’라고 생각했다. 고아 소녀와 후원자, 그리고 그 사이에 오가는 정겨운 편지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이 이야기는 단순한 동화가 아니었다. 오히려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독립적인 정체성을 찾아가는 주체적인 인물의 성장 기록이자, 한 시대의 젠더 구조에 조용하지만 단단.. 2025. 4. 10.
『노인과 바다』 – 지는 싸움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 바다와 노인, 물고기, 해와 별, 뱃사공과 맨손의 사투.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이렇게 몇 가지 단순한 요소만으로도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는 걸작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단순히 '고기 잡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작품은 겉으로는 단순하고, 서술은 건조하지만, 그 안에는 한 인간의 인생 전체가, 그리고 인간 존재의 존엄과 허무가, 고요하면서도 장엄하게 녹아 있다.처음 읽었을 때는 중학생이었다. “노인이 물고기를 잡다 만 이야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다시 읽은 『노인과 바다』는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 그것은 고독과 싸우는 이야기였고, 패배를 받아들이는 법을 말하는 책이었으며, 지는 싸움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 2025. 4. 10.
『모비딕』 – 고래를 쫓는 인간, 혹은 인간을 쫓는 고래 처음 『모비딕』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하나의 거대한 ‘모험소설’을 기대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사내들의 항해, 흰 고래를 둘러싼 치열한 추격전, 풍랑과 폭풍, 선박의 비명과 선원들의 거친 숨소리. 그러나 몇 장을 넘기자마자 나는 금세 깨달았다. 이 책은 단순한 고래잡이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끝내 설명하지 못하는 세계, 우리 내면의 어둠, 집착과 운명, 신과 허무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존재의 수수께끼를 좇는 정신의 항해였다.『모비딕』은 읽을수록 바다가 아닌, 인간의 내면으로 깊이 잠수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에이허브 선장'이라는 폭풍 같은 인물이 있다. 그는 모비딕이라는 흰 고래를 쫓지만, 사실은 그 고래 너머에 있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모비딕』 – .. 2025. 4. 10.
『이방인』 –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끝내 침묵하는 자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이방인』의 첫 문장은 너무도 담담하게 시작된다. 어머니의 죽음을 ‘그저 그런 일상’처럼 말하는 주인공 뫼르소의 어조는 독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어떻게 이런 말이 가능할까?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나는 이 질문이 엇나간 것임을 깨달았다. 뫼르소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우리가 익숙한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다.『이방인』은 말 그대로 ‘타자’의 이야기다. 인간 사회라는 커뮤니티에서, 하나의 규범이나 정서에서 벗어난 자의 이야기. 그러나 단순히 ‘이질적인 사람’이 아닌, 철저하게 세상과 불화하지 않고,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으며, 진실하게 살아가려 한 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이방인』 –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끝내 침묵하는 자.. 2025.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