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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 지는 싸움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 바다와 노인, 물고기, 해와 별, 뱃사공과 맨손의 사투.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이렇게 몇 가지 단순한 요소만으로도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는 걸작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단순히 '고기 잡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작품은 겉으로는 단순하고, 서술은 건조하지만, 그 안에는 한 인간의 인생 전체가, 그리고 인간 존재의 존엄과 허무가, 고요하면서도 장엄하게 녹아 있다.처음 읽었을 때는 중학생이었다. “노인이 물고기를 잡다 만 이야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다시 읽은 『노인과 바다』는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 그것은 고독과 싸우는 이야기였고, 패배를 받아들이는 법을 말하는 책이었으며, 지는 싸움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 2025. 4. 10.
『모비딕』 – 고래를 쫓는 인간, 혹은 인간을 쫓는 고래 처음 『모비딕』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하나의 거대한 ‘모험소설’을 기대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사내들의 항해, 흰 고래를 둘러싼 치열한 추격전, 풍랑과 폭풍, 선박의 비명과 선원들의 거친 숨소리. 그러나 몇 장을 넘기자마자 나는 금세 깨달았다. 이 책은 단순한 고래잡이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끝내 설명하지 못하는 세계, 우리 내면의 어둠, 집착과 운명, 신과 허무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존재의 수수께끼를 좇는 정신의 항해였다.『모비딕』은 읽을수록 바다가 아닌, 인간의 내면으로 깊이 잠수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에이허브 선장'이라는 폭풍 같은 인물이 있다. 그는 모비딕이라는 흰 고래를 쫓지만, 사실은 그 고래 너머에 있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모비딕』 – .. 2025. 4. 10.
『이방인』 –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끝내 침묵하는 자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이방인』의 첫 문장은 너무도 담담하게 시작된다. 어머니의 죽음을 ‘그저 그런 일상’처럼 말하는 주인공 뫼르소의 어조는 독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어떻게 이런 말이 가능할까?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나는 이 질문이 엇나간 것임을 깨달았다. 뫼르소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우리가 익숙한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다.『이방인』은 말 그대로 ‘타자’의 이야기다. 인간 사회라는 커뮤니티에서, 하나의 규범이나 정서에서 벗어난 자의 이야기. 그러나 단순히 ‘이질적인 사람’이 아닌, 철저하게 세상과 불화하지 않고,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으며, 진실하게 살아가려 한 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이방인』 –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끝내 침묵하는 자.. 2025. 4. 10.
떠도는 자의 아름다움, 『크눌프』를 읽고 책을 읽다 보면 문득 그런 인물이 있다. 현실에선 결코 되고 싶지 않으면서도, 왠지 마음 한편이 저릿해지는, 부러움과 연민이 동시에 드는 인물.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Knulp)』는 그런 모순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을 품고 있는 이야기다. 그는 세상과 조화를 이루려 하지 않으며, 길 위에서 삶을 보낸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동시에 모든 것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바로 그 ‘크눌프’다.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크눌프라는 인물의 삶이 너무도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다. 사랑을 놓치고, 일도 하지 않으며, 병든 몸으로 방랑하는 그의 삶은, 현실에선 파멸에 가까운 삶이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그가 과연 실패한 삶을 살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의심하게 됐다. 그는 외롭지만, 고요한 평화를 가.. 2025. 4. 9.
『지킬 박사와 하이드』 – 나 자신을 마주하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 처음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접했을 때, 나는 그것이 단순한 고전 호러소설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이중인격, 광기, 살인, 도덕과 본능의 충돌. 흔히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차용된 ‘지킬과 하이드’의 이미지 때문에 이 작품은 어느 순간 진부한 상징이 되어버렸고, 너무 익숙해서 도리어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하이드’가 타인이 아닌,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너무도 명확히 느꼈기 때문이다.이 소설은 단순히 ‘착한 의사’와 ‘악한 괴물’의 대립 구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내부에서 벌어지는 가장 본질적인 투쟁을 그려낸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아닌, 억압과 충동, 사회성과 본능 사이에서 찢겨 나가는 한 인간의 고통이다. 그리고 지.. 2025. 4. 9.
『수레바퀴 아래서』 – 부서진 영혼, 교육의 이름으로 짓밟힌 꽃 헤르만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책을 덮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다. 무언가 고요하게, 그러나 무섭게 가라앉는 감정이 내 안에 퍼졌다. 한스 기벤라트의 짧고도 애달픈 삶을 따라가는 내내 나는 그를 지켜보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마치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채로 점점 깊은 강물로 가라앉는 친구를 바라보는 느낌. 이 소설은 단순한 성장담이 아니다. 그것은 교육의 이름 아래 자행되는 폭력과 무관심, 순응이라는 이름의 억압이 한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보고서다.『수레바퀴 아래서』 – 부서진 영혼, 교육의 이름으로 짓밟힌 꽃한스는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신학교에 진학하는 유망주다. 마을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소년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축복이 아닌 압.. 2025.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