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접했을 때, 나는 그것이 단순한 고전 호러소설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이중인격, 광기, 살인, 도덕과 본능의 충돌. 흔히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차용된 ‘지킬과 하이드’의 이미지 때문에 이 작품은 어느 순간 진부한 상징이 되어버렸고, 너무 익숙해서 도리어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하이드’가 타인이 아닌,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너무도 명확히 느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단순히 ‘착한 의사’와 ‘악한 괴물’의 대립 구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내부에서 벌어지는 가장 본질적인 투쟁을 그려낸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아닌, 억압과 충동, 사회성과 본능 사이에서 찢겨 나가는 한 인간의 고통이다. 그리고 지킬 박사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 나 자신을 마주하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
지킬 박사는 성공한 의사이자 도덕적인 신사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위치에 맞게,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그 안에서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한다. 하이드는 단순한 악마가 아니다. 그는 지킬이 억눌렀던 모든 욕망, 충동, 감정을 여과 없이 분출하는 존재다. 하이드는 욕망 그 자체다.
나는 이 설정이 너무나 섬뜩하게 느껴졌다. 나 또한 ‘지킬’로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하고, 친절하게 행동하고, 도덕적인 기준을 지키려 애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짜증, 분노, 질투, 원망,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파괴욕 같은 감정들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그런 감정들을 외면하고 부정하면서 ‘나쁜 내가 아니다’라고 믿고 살아간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감추고 있기 때문’일까? 지킬 박사가 만든 하이드는 결국 억압된 감정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스티븐슨은 말한다. “우리가 외면한 자아는, 결국 우리를 파괴하러 돌아온다.”
사회가 만든 괴물
이 작품을 읽으며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하이드가 정말 악한가?” 그는 비도덕적이고 잔인한 일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 근원을 따라가면, 하이드는 지킬이라는 인격 안에 있었고, 오직 억눌림을 통해 탄생했다. 다시 말해, 하이드는 지킬이 만들어낸 존재이자, 지킬이 두려워한 진짜 자기 자신이다.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요구한다. 예의, 질서, 도덕, 성공.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욕망을 포장하고 감정을 억제한다. 하지만 그러한 억압이 지속되면, 언젠가 그 감정은 굉음과 함께 폭발한다. 실제로 우리는 세상에서 충격적인 사건들을 접할 때, 종종 ‘그 사람 평소에 너무 착했는데’라는 말을 듣는다. 착했기에, 그래서 더 억눌렀기에, 결국 하이드는 터져 나온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소설이 주는 무서움이 단지 살인 장면 때문이 아님을 알았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나도 하이드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말한다. 아니, 정확히는 ‘이미 하이드를 갖고 있다’는 것을 들춰낸다. 이 소설은 괴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괴물을 자각하게 만든다.
자아 분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현대 사회는 자아 분열을 조장한다. SNS에서는 늘 밝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직장에서는 팀워크와 효율성을 강조하며 감정을 숨긴다. 그리고 밤이 되면, 우리는 고요한 방 안에서 ‘진짜 나’와 마주하게 된다. 그 때 문득,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위화감을 느낀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시대를 초월한 경고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언제나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얼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통합하느냐이다. 지킬은 하이드를 ‘따로 분리’하려 했기 때문에 비극을 맞았다. 만약 그가 자신의 어두운 면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면, 하이드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 안의 어둠을 부정하고 외면할수록, 그것은 더 강하게 되돌아온다. 때로는 타인을 해치는 말로, 행동으로, 또는 나 자신을 병들게 하는 방식으로. 그러니 우리는 하이드를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를 이해해야 한다. 그도 결국 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마무리하며 – 나에게도 하이드는 있다
책장을 덮고 한참 동안 나는 내 안의 하이드를 떠올렸다. 분노를 삼킨 적, 질투로 마음이 끓었던 적,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들. 그 모든 감정이 나를 구성한다. 나는 지킬이면서 하이드다. 모두가 그렇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는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두 얼굴 모두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진짜 ‘자기 자신’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인간의 본질을 꿰뚫은, 너무나도 무서운 고전이다. 그리고 그 무서움은,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볼 때 가장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