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 — 상처 위에 불어오는 문장의 바람

by rya-rya-day 2025. 4. 6.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 책 관련 사진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 책 사진

『바람이 분다, 가라』는 소설이지만, 시이기도 하고, 동시에 하나의 조각물 같다. 한 줄,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그 문장이 칼날처럼 예리하게 파고드는 동시에, 생채기를 감싸주는 듯한 온기를 전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끝없이 반복되는 상실과 존재에 대한 사유 속에 잠겼고, 그렇게 나 역시 바람을 따라 흘러가는 나뭇잎처럼, 멈추지 못한 채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

이 책은 읽는 내내 조용하다. 외치지 않는다. 큰 사건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장, 한 장이 무겁게 느껴진다. 인간의 삶이란 그렇게 말 없는 고통과 마주하며,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강은 그 침묵을 이야기한다. 바람처럼 조용하지만, 결코 스쳐지나가지 않는 문장으로.

1.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 — 상처 위에 불어오는 문장의 바람

『바람이 분다, 가라』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 잃어버린 관계,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위에서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다. 특히 '너 없는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회상하고 사유하는 주인공의 내면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무너뜨린다.

우리는 흔히 ‘죽음’이 삶의 끝이라 생각하지만, 이 소설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죽음 이후에도 남겨진 이들은 살아야 하고, 기억은 계속해서 고개를 들이민다. 삶이란, 오히려 그런 죽음 이후에 진정한 무게를 가지는 건 아닐까. 한강은 이 책을 통해 ‘부재의 존재감’을 이야기한다.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강렬하게 존재하는 무언가.

작품 속 인물들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미련이나 집착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가장 순수한 감정, 사랑의 흔적이다. 사랑은 때로 사람을 미치게도 만들고, 동시에 다시 일어서게도 만든다. 한강은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응축해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

2. 한강의 문장, 그 자체가 감정이다

한강의 글은 더 이상 수식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녀의 문장은 서정적이고 섬세하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정서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말 대신 흘러나오는 침묵, 침묵 대신 전해지는 온도. 바로 그것이 『바람이 분다, 가라』가 가진 힘이다.

이 책은 에세이 같기도 하고, 시집 같기도 하다. 장르를 굳이 나누는 것이 의미 없을 정도로 한강의 문장은 유영하듯 장면과 장면 사이를 떠다닌다. '분절된 기억'과 '흩어진 시간'을 따라가는 독자는 점점 이야기에 스며들게 된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마치 노트를 펴고 문장을 받아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글을 내 안에 하나하나 새겨넣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채워진 문장은 결국 나만의 기억과 감정으로 다시 피어났다. 이것이 바로 한강 문장의 마법이다. 읽는 이의 경험으로 다시 태어나는 문장.

3. 고요한 비탄, 그리고 그 너머

『바람이 분다, 가라』는 끝까지 감정을 절제한다. 독자에게 감정의 홍수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옆에 서서 손을 잡아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 한강은 독자의 감정에 기대지 않고, 온전히 인물의 감정으로 세계를 구성한다.

작품은 슬픔에 대해 말하지만, 그것이 결코 절망으로 끝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삶은 상실을 견디는 연속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견딤의 끝에는 아주 미세한 희망이, 혹은 단단한 체념이 자리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그 지점을 향해 걸어간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바람 속에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어떤 이는 지나간 사람이 되고, 어떤 이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그 바람 속에서 우리는 흔들리며 걷는다.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기도 하며. 그리고 결국에는 “가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결론: 바람은 언제나, 어디서든 분다

『바람이 분다, 가라』는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위로가 된다. 이 책은 말한다. 누구나 상처를 안고 있고, 누구나 누군가를 떠나보냈고,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이름 하나쯤은 품고 산다고.

삶은 그렇게 불완전하고, 덧없고, 어딘가 모르게 슬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 오늘도 바람은 분다. 그리고 한강은 조용히 말한다. “가라.” 그것이 이별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아는 사람만이 내뱉을 수 있는 말.

이 책은 단순히 '읽는' 책이 아니다. 오롯이 '머무는' 책이다. 아프고 조용한 모든 존재들에게, 조심스럽게 건네는 위로의 바람. 그 바람에 나도 살며시 눈을 감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