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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의 『나의 폴라 일지』 – 잊히는 존재들을 위한 한 권의 기록

by rya-rya-day 2025. 4. 7.

나의 폴라 일지 책 관련 사진
나의 폴라 일지 책 관련 사진

사람은 살아가면서 종종 자신을 잃어버린다. 세상이 말하는 ‘정상’이라는 틀 속에 자신을 억지로 욱여넣고,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다 보면, 문득 거울 속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김금희 작가의 『나의 폴라 일지』는 바로 그런 ‘잃어버린 나’에 대한 이야기이자, ‘사라졌지만 존재했던 이들’을 기억하는 애도의 문장으로 가득한 책이다.

이 소설은 ‘폴라’라는 이름의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는 단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조각들이 깃들어 있다. 작가는 폴라라는 인물에게 ‘잊힌 존재’라는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누구에게 기억되고 있습니까?”

『나의 폴라 일지』 – 잊히는 존재들을 위한 한 권의 기록

처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 ‘폴라’라는 이름이 어딘가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외국식 이름이지만, 내용 속에선 아주 한국적인 감정과 정서가 드러난다. 그래서일까, 이 인물은 실존 인물이라기보다 ‘상징’처럼 다가온다. 사회로부터 멀어진 채 조용히 사라져간 누군가, 혹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심하게 잊히고 있는 이름 없는 존재들의 집합.

소설은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을 들춰보는 듯한 형식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단순한 스토리라인보다 감정의 결을 따라 이야기를 이어간다. ‘나’라는 화자는 폴라를 쫓으며,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이중적인 구조는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 속에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나는 과연 내 주변의 폴라를 제대로 보고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나 자신과 내가 잊고 있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문장 하나하나에 깃든 애도의 정서

김금희 작가 특유의 문체는 차분하고 담백하면서도 묘하게 서늘하다. 지나치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짙은 슬픔이 배어 있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마치 감정을 억누른 채 꾹꾹 눌러쓴 편지를 읽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폴라는 그날 무척 웃고 있었지만, 나는 그 웃음이 어딘가 불안하게 느껴졌다.”

이 문장을 읽고 나서 한참 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불안한 웃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을까. 겉으론 괜찮은 척 하지만, 사실은 무너지고 있는 그 마음을 누가, 언제 알아줄 수 있을까.

김금희 작가는 화려한 비유나 묘사를 사용하지 않고도, 이렇게 감정을 직격한다. 그것이 이 책이 가진 힘이다. 절제된 서술 안에서 오히려 감정이 더 또렷하게 살아난다.

일지 속 기록은 ‘기억’의 저항이다

이 책에서 ‘일지’라는 형식은 단순한 이야기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증명이고, 동시에 망각에 대한 저항이다. 폴라라는 인물은 이름도, 삶도, 흔적도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그를 기억하려는 ‘나’의 기록을 통해 되살아난다.

이런 구조는 독자에게 강한 울림을 준다. 우리는 종종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김금희 작가는 말한다. “기억하라.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은 그를 다시 살아 있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말은 고스란히 독자의 마음에 남는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나 역시 누군가의 ‘폴라’였던 적이 있었는지, 혹은 지금도 내 곁에 조용히 사라져가는 폴라가 있는 건 아닌지 되묻게 된다.

주관적인 독후감: 나의 일지, 나의 기록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깊이 빠졌던 이유는, 이 작품이 내 개인적인 감정과도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내 일기장을 다시 꺼내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잊히는 것이 두렵다.” 정확히 3년 전, 삶의 방향을 잃고 허우적거리던 시절의 글이었다.

『나의 폴라 일지』는 그 시절의 나에게 말을 건네주는 것 같았다. “괜찮아, 너는 잊히지 않았어. 네가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으니까.” 이 단순한 메시지가 내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폴라는 실존 인물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녀는 분명히 존재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이 소설 속에, 그리고 독자들의 가슴 한켠에. 그리고 나는 이제 내 일지의 한 페이지에 이 책의 제목을 적어두었다.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살아 있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