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끝, 절망의 끝, 삶의 끝까지 나아간 한 젊은이의 무모한 고백이자, 동시에 시대와 사회에 대한 암묵적인 저항이다. 나는 이 책을 마치 베르테르의 유서처럼 읽었다. 문장마다 배어 있는 그의 고통과 열망, 현실과 이상의 충돌 속에서 어떤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낭만주의를 '아름다움'으로 포장하지만, 실상 낭만이란 삶의 균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태도다. 베르테르는 바로 그 균열 한가운데에서 살아간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끝내, 그 균열에 삼켜졌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낭만이란 이름의 질병, 혹은 눈부신 열병
베르테르가 샤를로테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미 그녀에게 모든 것을 내던지고 있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 미소 하나에 세상이 달라졌고, 그는 자신의 세계를 그녀로 채워나갔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더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사랑은 점점 현실과 괴리되며 병적인 집착으로 변한다. 샤를로테가 이미 약혼자 알베르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르테르는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하고 낭만화한다. 독자로서 나는 베르테르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게 거리두기를 하게 된다. 그의 사랑은 너무 순수하고, 너무 절절해서 현실을 감당하지 못한다. 마치 유리로 된 세계를 사랑한 아이처럼, 손을 뻗는 순간 모든 것이 부서져버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나는 베르테르의 슬픔이 단지 사랑의 실패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아의 붕괴, 세상과의 단절, 그리고 시대가 허용하지 않은 감정의 진폭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현실이라는 벽, 그리고 사회적 부조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개인의 연애 감정을 넘어선다. 작품 속에는 귀족 중심의 계급사회, 인간을 도구로 여기는 냉정한 체계, 감정보다 이성이 우선되는 시대적 배경이 짙게 깔려 있다. 베르테르는 귀족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교양 있는 시민계급의 젊은이다. 그는 일상과 노동에 염증을 느끼고, 예술과 자연 속에서 자신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그런 세계는 현실에서 살아가기엔 너무도 약했다.
나는 그가 점점 몰락하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오늘날의 청년들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자각, 그리고 선택의 여지가 줄어드는 삶 속에서 느끼는 무기력감은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 사회의 단면과 닮아 있다.
베르테르는 사랑을 통해 삶을 회복하려 했지만, 그조차도 자신의 이상처럼 무너지자 결국 죽음을 택한다. 그것은 단순한 이별의 아픔을 넘은, 자아 전체의 붕괴를 의미했다. 괴테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듯하면서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냉정한 진실도 함께 던진다.
괴테의 통찰, 그리고 독자의 몫
이 책을 읽고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구절은, 베르테르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샤를로트를 떠올리는 장면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며 편지를 쓴다. 그 문장은 마치 삶 전체를 갈무리하는 유언 같았다. 삶은 너무 복잡하고, 세상은 너무 무심하며, 사랑은 너무나 벅찼다는 고백.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간의 삶이라는 걸, 이 젊은이는 너무 빨리 깨달아버렸다.
내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단지 한 청년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낭만주의의 정점이자, 동시에 그 몰락을 기록한 기록물이다. 감정을 최대치로 밀어붙였을 때,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가? 그리고 또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 베르테르는 그것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지금 이 시대에 베르테르가 있었다면
가끔 나는 생각한다. 만약 베르테르가 지금의 시대에 살아 있었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SNS에 감정적인 글을 올리고, 마음을 몰라주는 세상에 분노했을까? 아니면 상담을 통해 마음을 다독이며 새로운 인생을 설계했을까?
그러나 중요한 건, 그가 어떤 삶을 살았든 간에 그의 감정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다. 사랑, 고독, 슬픔, 절망은 시대를 초월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감정이다. 괴테가 20대의 나이에 이 책을 썼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이 작품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가슴을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결코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살아 있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