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는다는 건, 인간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는 어떤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는 일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라는 개념이 사실은 얼마나 복잡하고 무거운 것인지, 또 때로는 그 자유로 인해 얼마나 인간이 불안해질 수 있는지를 절감했다. 우리가 자유를 사랑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 자유를 회피하거나 다른 형태로 위장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저자의 통찰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강하게 유효하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자유 그 자체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부딪힌 건 '자유'에 대한 나 자신의 모순된 태도였다. 나는 늘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고 말해왔지만, 정작 누군가 내게 "그 자유를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자유는 선택의 가능성이며, 그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프롬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그는 인간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점차 ‘자유’를 얻어왔는지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그 자유가 얼마나 큰 불안과 외로움을 야기했는지를 지적한다.
개인의 독립이 증가할수록, 우리는 더 고립된다. 더 이상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책임져주지 않고, 어떤 신념이나 전통도 내 삶의 기준이 되어주지 않는다. 자유는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해야 한다는 뜻이고, 그만큼 삶의 무게는 온전히 내 몫이 된다. 이런 자유는 때때로 사람들에게 공포로 다가오며, 결국 그들은 자유로부터 도망치게 된다.
자유로부터 도망치는 세 가지 방식
프롬은 이 책에서 인간이 자유를 회피하는 대표적인 세 가지 방식을 설명한다. 바로 권위에의 복종, 파괴 충동, 기계적 동조다. 이 중에서도 나는 '기계적 동조' 부분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프롬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외면적으로는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실상은 대부분 사회의 기대와 요구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나 자신을 돌아봤을 때도 이 말은 뼈아프게 와닿았다.
개성을 강조하는 시대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정해진 틀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내가 내리는 선택이 진정 내 의지로부터 나온 것인지, 아니면 사회의 프레임에 나를 끼워 맞춘 것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자유라는 외피 속에 감춰진 복종, 그것이야말로 가장 교묘한 ‘자유로부터의 도피’일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자유를 두려워하는가
프롬은 자유가 인간에게 주는 외로움과 책임감이 때로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고 말한다. 특히 현대사회는 개인주의가 팽배해졌고, 가족이나 종교, 지역 공동체의 힘이 약해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롭고 불안해졌다. 이 불안을 견디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을 누군가에게 의탁하거나, 집단에 흡수되거나, 전체주의적 체계에 동조한다.
나는 이 내용을 읽으며, 근래 한국 사회에서 급격히 늘어난 혐오와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 현상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왜 이토록 한 쪽 이념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가? 그것은 그들이 자유롭기보다는 안도하고 싶기 때문 아닐까? 내가 속한 집단이 나를 보호해주고, 정체성을 부여해주며, 삶의 의미를 대신 설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건 어쩌면 우리가 자유를 버리는 대가로 얻고자 하는 일종의 ‘심리적 안전망’일 것이다.
자유는 곧 자기 자신과의 대면이다
프롬은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단지 외부의 억압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내면의 자아와 진실하게 만나는 과정이라고.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져야 했다. 나는 얼마나 내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가? 나는 정말 나의 뜻대로 살고 있는가?
프롬은 진정한 자유를 위해 필요한 요소로 ‘자발성’을 말한다. 그것은 의무가 아닌 내적 동기에서 비롯된 삶의 태도다. 사랑, 창조성,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 그런 것들이 자유를 실질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 자유는 단지 외로운 고립이 아니라,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말에서 작지만 중요한 위안을 얻었다. 자유는 나 혼자만의 몫이 아니라, 함께 나눌 수 있는 감정이자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할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단순히 정치 철학서나 심리학서로 읽히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다. 특히 혼란과 불확실성이 팽배한 지금 같은 시대에, 우리는 더욱더 쉽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누군가가 ‘정답’을 말해주길 바라게 된다. 그러나 프롬은 말한다. 그 유혹을 경계하라고. 자유는 고통스럽지만, 진실한 인간이 되는 유일한 길이라고.
이 책은 끝내고 나서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나를 계속해서 돌아보게 만들고, 삶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게 만든다. 나는 이제 더는 ‘자유롭고 싶다’는 말로 도피하지 않을 것이다. 그 자유를 책임질 준비를 조금씩 해나가야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프롬이 이 책을 통해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