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솔직히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울해진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책’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끌렸던 이유는 어쩌면 내 안에도 ‘인간으로서의 실격감’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깊고 어두운 질문이 드는 때가 있다. 『인간 실격』은 바로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웅크리고 있어주는 책이다.
『인간 실격』을 읽고 – 허무의 끝에서 인간다움을 다시 묻다
주인공 요조는 웃긴 사람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는 사람들을 웃기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웃음은 진짜가 아니다. 그것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방어기제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두렵고, 누군가의 진심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일부러 광대가 된다. 익살과 유머로 무장한 그 껍데기 속에는 외로움과 허무, 그리고 끝없는 자기혐오가 숨겨져 있다.
이 설정은 내게 너무도 익숙하게 다가왔다. 나 역시 종종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려, 불편한 상황을 웃음으로 넘기려 애쓴다. 요조처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불안을 느끼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웃는 얼굴을 내세우기도 한다. 다자이는 인간 내면의 비참함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그러나 품격 있게 표현한다. 읽는 내내 불편하면서도, 외면할 수 없는 거울을 들이대는 느낌이었다.
인간 실격, 과연 누가 그 자격을 정하는가
요조는 자신이 ‘인간 실격’이라고 말한다. 그는 술과 마약, 여성 편력에 빠져 삶을 점점 망가뜨린다. 사회의 눈으로 보면 그는 도덕적으로 파탄났고, 구제 불능의 인물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나는 읽는 내내 요조가 너무도 인간적이라고 느꼈다. 그는 정직하게 자신의 어둠을 바라보았고, 그것을 인정했다. 그 점에서 그는 차라리 ‘인간 자격’이 있다.
현대 사회는 성공과 성취, 긍정적인 에너지로 넘친다. SNS는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하며, 성실하게 사는 듯한 착시를 만들어낸다. 그런 시대에 『인간 실격』은 불편한 진실을 들이민다. ‘너는 괜찮니? 정말 괜찮은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지 않니?’ 이 질문은 내게 너무도 깊게 꽂혔다. 때때로 우리는 실패하거나 무너지는 것을 ‘인간 실격’이라 여기지만, 오히려 그 순간이야말로 인간다움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다자이 오사무와 요조, 그리고 나
『인간 실격』이 주는 깊은 울림은 단지 주인공 요조의 이야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 책은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삶과도 깊이 얽혀 있다. 그는 실제로 요조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 여러 번의 자살 시도, 방탕한 삶, 불안정한 인간관계. 결국 다자이는 이 소설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인과 함께 투신자살한다. 이 책은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목소리이자, 삶에 대한 유서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점점 그에게 빠져들었다. 요조의 말은 다자이의 말이었고, 다자이의 말은 내 안의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 실격’을 겪는다. 삶에서 버려졌다고 느끼고,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며, 자신의 존재가치에 회의하는 순간들. 다자이는 그것을 감추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 용기에 나는 경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이 나에게 남긴 것
『인간 실격』은 결코 위로를 주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더 깊은 어둠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이상한 위안을 받았다. ‘이렇게까지 솔직할 수 있구나’, ‘이렇게까지 무너져도 되겠구나’ 하는 해방감.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이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용기 아닐까.
책을 덮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마음 한구석이 아리면서도 따뜻했다. 요조는 실패했고, 무너졌고, 사라졌지만,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도 조금은 더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삶은 늘 깨어지기 쉬운 유리잔 같다. 『인간 실격』은 그 유리잔을 깨뜨려 보이며, 그 안에 담긴 우리 내면의 찌꺼기와 고요를 보여준다.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고백이고, 증언이고, 마지막 인사다. 삶의 끝에서 건네는 다자이 오사무의 말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요조의 마지막 문장이 아직도 내 귀에 맴돈다.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선... 나는 아무것도 몰라.”
그 말이 이토록 깊게 와 닿는 이유는, 아마 나 역시 인간이라는 감정의 무게에 늘 흔들리며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