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린 왕자』는 이상한 책이었다. 어른들이 좋아한다고 했지만, 어린 나에게는 낙타를 삼킨 보아뱀 이야기나 장미꽃과 여우, 숫자에 집착하는 어른들이 그저 환상처럼 느껴졌고, 정확히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어린 왕자를 ‘이해할 수 없는 동화’로 분류한 채 책장에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삶이 복잡해질수록 이 얇은 책은 내게 무언가를 말해오는 듯한 기묘한 힘을 가졌다. 『어린 왕자』는 단순한 동화가 아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통찰이자, 사랑에 대한 질문이며, 존재에 대한 철학이다.
『어린 왕자』, 다시 읽을 때마다 달라지는 별 하나의 이야기
이 문장은 너무 유명해서 이제는 피상적으로 소비되는 말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이 말이 주는 울림에 경외심을 느낀다. 요즘은 모든 것을 숫자와 데이터로 평가하는 시대다. 팔로워 수, 조회수, 연봉, 면적, 등수... 우리는 무언가를 눈으로 확인해야 믿는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그 모든 기준에 물음을 던진다.
여우와의 대화는 특히나 인상 깊다. 여우는 말한다. “너는 네 장미를 네 장미로 만든 시간이 있어.” 우리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게 마음을 주고,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쏟음으로써 의미를 만들어간다. 그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다. 그래서 어린 왕자가 장미를 떠나와 수많은 장미를 봤을 때, “내 장미는 특별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의 상실감과 여우와의 대화를 통해 다시 깨닫는 장미의 소중함은, 사랑에 대한 아주 깊은 비유가 된다.
어린 왕자는 순수한 존재다. 그는 판단하지 않고, 물어보며, 관찰하고, 무엇보다 사랑을 믿는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문득문득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언제부터 사랑을 표현하는 데 조심스러워졌고, 언제부터 믿음보다 의심이 앞서게 되었을까? 『어린 왕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는 원래 사랑하고, 신뢰하고, 별을 바라보던 존재였다고.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
책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이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른이 되어야만 진짜로 이해할 수 있다. 왕, 허영심 많은 사람, 술꾼, 사업가, 점등인, 지리학자... 어린 왕자가 여행하며 만나는 이들은 모두 어른의 다양한 모습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 왕은 통제하려 하고, 허영가는 인정받고 싶어 하며, 사업가는 끊임없이 소유하려 한다.
이 모습들은 사실 우리 모두 안에 존재한다. 나는 때때로 인정받고 싶어서 SNS에 내 삶의 조각을 올리고, 더 나은 커리어를 위해 끝없이 일하며, 집을 사고 차를 바꾸고 옷을 사며 ‘무언가를 가진다’는 감각에 안도한다. 그런데 그렇게 바쁘게 살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린 왕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사는 거야?” 우리는 대답할 수 있을까? 그것이 진짜 원하는 삶인지, 아니면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을 따르는 것인지 말이다. 나는 어린 왕자가 어른들에게 보내는 이 풍자와 질문이, 해학이 아니라 아주 날카로운 통찰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별을 바라보며, 사랑을 다시 기억하다
『어린 왕자』는 결국 이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로 돌아가기 위해, 뱀에게 물리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죽음인지 귀향인지 독자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그가 떠났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책은 조용히 끝난다. 어딘가 울고 있을지 모를 어린 왕자를 위해 하늘의 별을 바라보라고.
이 결말은 어릴 땐 무서웠다. 주인공이 죽는 동화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이 책이 가진 아름다움의 정점이라는 걸 안다. 이별은 슬프지만, 그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별을 보면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으니까.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먼 곳에 있어도, 그 사람과의 추억이 내 마음속에 살아있는 것처럼.
나는 이 구절을 참 좋아한다. “어느 날 너는 울게 될 거야. 그러면 나는 웃고 있을게.” 삶이란, 그렇게 누군가와의 기억으로 계속 연결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별을 보며 웃고, 눈물을 흘리며도 사랑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우리에게 말하는 사랑의 방식이다.
어린 왕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린 왕자』는 읽을 때마다 달라지는 책이다. 아이일 때, 어른일 때, 슬플 때, 사랑에 빠졌을 때, 이별 후에... 책은 늘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어떤 날은 위로가 되고, 어떤 날은 반성의 계기가 되며, 또 어떤 날은 잊고 있던 순수를 일깨워준다.
나는 이 책을 최소 다섯 번은 읽었고, 그때마다 새로운 문장을 만났다. 그리고 그 문장들이 나를 다시 사람답게 만들어 주었다.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다 보면 우리는 너무 빨리 어른이 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 우리는 다시 어린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내 안의 순수와 사랑을 회복하는 일이다.
어린 왕자는 어딘가에 있다. 아마도 나의 마음 한 켠, 무언가를 잊지 않으려는 그 조용한 자리에서. 그리고 오늘도 하늘의 별 하나를 바라보며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