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길은 너만이 안다."
처음 『싯다르타』를 집어 들었을 때, 나는 지쳐 있었다. 무엇에 지쳤는지 정확히 말할 순 없었지만, 삶이라는 강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던 시기였다.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고, 열심히 했다. 하지만 문득 돌아보니, 그 열심은 전부 누군가가 말한 정답을 향한 질주였을 뿐이었다.
그때 만난 이 책은, 삶을 다시 질문하게 했다. ‘나는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 걸까?’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 ‘이 삶의 목적은 무엇이며, 나는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일까?’
『싯다르타』 – 정답이 없는 시대에 길을 묻다
『싯다르타』는 한 인간의 여정을 그린다. 태생부터 영적인 기운이 강했던 싯다르타는 진리를 찾아 길을 떠난다. 사문이 되어 고행을 하기도 하고, 부처를 만나 감명을 받기도 하지만, 그는 어느 것도 ‘그 자체’로는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닫는다. 그는 말한다.
"나는 누구에게도 배울 수 없다. 나는 내가 되어야 한다."
이 한 문장은 내게 벼락처럼 꽂혔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남에게 배웠던가. 좋은 직장을 다니는 선배를 부러워했고, 타인의 방식이 내 길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 길은, 내 것이 아니었다.
싯다르타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부정하며 전진한다. 무소유의 삶을 버리고, 세속에 들어가 재물과 쾌락을 탐닉하고, 그 후 다시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 그 여정은 어찌 보면 모순의 반복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삶이란 애초에 선형적이지 않다. 돌고 돌아도, 그것이 바로 삶의 리듬이다.
진리를 찾는 법: 스스로 겪는 것만이 내 것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강하게 느낀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나는 늘 누군가의 말을 옳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스승의 말, 부모의 조언, 유명인의 인터뷰, 베스트셀러의 조언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실천해본 적은 별로 없었다.
싯다르타는 다르다. 그는 누구의 길도 걷지 않는다. 심지어 깨달음을 얻은 부처조차 “그분의 말씀이 위대하나, 그 길은 나의 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고집스러움, 이 외로움, 이 강인함. 나는 그것을 동경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도 내 길을 걸어야만 한다는 것을.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삶의 여정이기에.
강가에서의 침묵, 존재의 본질을 깨닫다
책 후반부에서 싯다르타는 강가에서 살기 시작한다. 그는 말을 멈추고, 질문도 멈춘다. 그저 ‘존재’ 그 자체로 살아간다.
그 장면은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요즘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를 마주한다. 책, 영상, 뉴스, SNS… 세상은 온통 말로 가득하다. 그 말 속에 눌려, 나의 내면은 침묵할 기회를 잃었다.
하지만 진리는, 언제나 침묵 속에서 온다. 고요한 새벽, 커피향 속에서, 누군가의 따뜻한 눈빛 속에서. 그리고 나 자신을 마주하는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는 요즘, 하루에 10분씩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본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어느새 그 시간이 내게 가장 진실한 시간이 되었다. 말이 아닌 침묵, 행동이 아닌 존재, 이 모든 것이 『싯다르타』가 내게 알려준 진리였다.
부처가 되기보다 인간으로 살아가기
이 책은 단순한 종교 서적도, 철학책도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삶 그 자체에 대한 소설’이라 부르고 싶다.
싯다르타는 결국 깨달음을 얻지만, 부처가 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실수하고, 후회하고, 사랑하고, 아파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 모습은 나에게 큰 울림을 줬다. ‘완벽해지려는 집착’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우리는 누구도 부처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 충만하게 살아갈 수는 있다.
『싯다르타』, 그 길은 곧 나의 길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삶은 조금 달라졌다. 변화는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확실하다.
- 더 이상 타인의 시선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
- 스스로 질문하는 습관이 생겼다.
- 흔들려도 괜찮다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이게 되었다.
『싯다르타』는 조용히 내게 말했다. “너는 너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