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고 덮은 뒤, 나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봄이라는 단어는 흔히 따뜻하고 설레는 것이라 여겨지지만,
『소설 보다 : 봄 2025』를 읽고 난 후의 감정은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이번 호는 마치 꽃샘추위처럼, 따뜻함과 서늘함 사이를 오가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가득 품고 있다.
한 계절, 세 편의 소설.
짧지만 선명하고, 소리 내지 않아도 마음에 깊이 박히는 이야기들.
이 책은 ‘봄’이라는 계절 속에서 다시 태어나려는 이들의 조용한 투쟁기이자,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은밀한 고백집처럼 느껴졌다.
소설 보다 : 봄 2025 – 이 계절의 문장은 누군가의 마음을 다녀간다
책을 펼치자마자 마주한 이서수 작가의 「가라, 오디세우스」는 상실과 귀환, 혹은 그 둘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였다.
제목에서부터 익숙한 서사 ‘오디세우스’가 등장하지만, 이 작품이 다루는 귀향은 영웅의 것이 아닌, 한없이 사적인 귀환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누군가를 떠나보낸 후에야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부재가 모든 장면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고,
주인공의 일상은 애써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문장의 결마다 그 슬픔의 틈이 고스란히 비친다.
이서수의 문장은 담백하지만 날이 서 있다.
그는 독자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마지막 문장을 덮는 순간,
독자는 고요한 감정의 늪에 빠져 있게 된다.
‘떠나는 것과 남아 있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아픈가요?’
그 질문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고, 나는 그 답을 선뜻 고를 수 없었다.
아마도 이서수 작가는, 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믿는 듯했다.
2. 손원평, 「카운터」
두 번째 단편은 손원평 작가의 「카운터」였다.
손원평은 『아몬드』, 『서른의 반격』 등을 통해 이미 섬세한 감정 묘사와 날카로운 사회 인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 단편에서도 그녀는 한 개인의 내부와 외부를 정밀하게 관찰하는 시선을 보여준다.
‘카운터’는 마트의 계산대가 아닌, 삶의 경계를 셈하는 어떤 자리처럼 느껴졌다.
주인공은 누군가에게 늘 '친절해야 하는 사람'이고,
감정을 억누른 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닳아간다.
하지만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그런 반복적인 피로감 속에서도 삶의 작은 균열이 만들어내는 전환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설의 마지막,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누군가는 알아채지 못할 만큼 미세한 움직임.
하지만 그 변화는 오히려 진짜 변화였다.
삶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거대한 사건이 아닌,
매일 반복되는 피로 속 아주 사소한 ‘의지’로 버티며 나아간다.
손원평의 이 소설은 지친 사람들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당신은 잘하고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그보다 더 진한 응원을 건네는 방식으로.
3. 정영수, 「리플레이」
마지막 단편은 정영수의 「리플레이」다.
가장 문학적인 실험이 엿보이는 작품이기도 했고,
‘만약 인생을 다시 플레이할 수 있다면’이라는 낯익지만 늘 새롭게 느껴지는 질문을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였다.
정영수 작가는 복잡한 감정을 정제된 언어로 그려내는 데 능하다.
이 소설 역시 그렇다.
단순한 반복이 아닌, 반복 속에서 생겨나는 의지의 불씨를 천천히 키워나간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이 이야기가 후회에 사로잡히지 않는 방식으로 회귀를 다룬다는 점이었다.
주인공은 자신이 반복하고 있다는 걸 어느 순간 직감하고,
그 안에서 단 하나라도 바꾸기 위한 시도를 시작한다.
그건 거창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일,
아주 조용한 친절,
혹은 말하지 않고도 누군가 곁에 있어주는 일.
리플레이라는 제목은 결국,
‘다시 할 수 있는 용기’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 용기는 대개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그 작은 시도가 결국 누군가의 생을 구원한다는 걸
이 작품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시간, 문장 하나가 버팀목이 된다
『소설 보다』 시리즈는 매 계절 나오는 작품집이지만,
계절의 흐름보다 더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문학은 여전히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번 『봄 2025』호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문학은 거창한 대답을 주지 않아도,
당신 옆에 잠시 앉아 있을 수 있어요.”
세 편의 소설은 각기 다른 목소리와 시선으로,
한 계절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속 결을 건드렸다.
그리고 그 결은, 우리가 지금 이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증거로 남는다.
마무리하며 – 문학은 '보다'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일
『소설 보다』라는 제목은 언제 봐도 좋다.
문학을 '본다'는 것은 단순한 독서 행위가 아니다.
그건 타인의 삶을 엿보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소설 보다 : 봄 2025』는 그런 점에서 정말 좋은 책이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누군가의 삶 속에 깊이 들어갔다가 조용히 나올 수 있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그러나 뭔가가 조금씩 바뀐 채로.
나는 이제 이 책을 친구에게 건네려 한다.
“요즘 어때?”라고 묻는 대신에.
소설 속 누군가의 말 한 줄이, 그에게 닿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