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 얼마나 조용하고도 낯선 질문인가. 이 책을 처음 집어 들고 이 문장을 마주한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좋아한다. 클래식은 잘 모르지만, 좋아한다.” 그렇게 프랑수아즈 사강이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조용히 그녀의 세계로 발을 들였다. 그리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연애’를 그린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밀도와 무게를 클래식처럼 오래된 선율로 들려주는 고요한 선언문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고 – 사랑이라는 오래된 감정의 클래식
주인공 폴은 39세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아름다우며, 지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이다. 그녀에게는 로제라는 오랜 연인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권태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이름만 연애일 뿐, 그 안에는 더 이상 서로를 향한 애틋함도 설렘도 없다. 로제는 그녀에게 충실하지 않으며, 폴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살아간다. 왜? 그녀는 상처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끝내는 것’이 더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시몽이라는 25살의 청년이 등장한다. 시몽은 폴에게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시몽은 젊고 순수하며, 폴을 진심으로 대한다. 그는 그녀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 단순한 음악 취향을 묻는 듯한 이 말은, 사실 폴의 내면을 두드리는 낯선 목소리였다. 브람스라는 클래식 음악은 시몽이라는 인물의 순수한 사랑을 상징한다. 그것은 기존의 ‘익숙한 관계’와는 다른 리듬을 가진 감정이다. 느리지만 깊고, 조용하지만 절절한 감정.
폴은 갈등한다. 현실적으로 보면 시몽은 너무 어리다. 그녀가 쌓아온 삶의 구조와 맞지 않는다. 하지만 감정은 언제나 논리보다 앞선다. 그녀는 시몽의 순수함에 끌리고, 동시에 자신이 더는 ‘사랑받을 수 없는 나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이 관계는 폴에게 있어 마지막 불꽃 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다시 한번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유일한 감정이었을까?
사강이 말하는 사랑은 흑백이 아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사강이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도덕’이라는 잣대로 누군가의 관계를 평가한다. 하지만 사강은 그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로제는 바람을 피우지만, 비난받지 않는다. 시몽은 감정에 충실하지만, 철없는 청년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폴은 흔들리지만, 결코 나약하지 않다. 모든 인물들이 복잡하고 모순적인 동시에, 인간적이다.
사강은 이 복잡한 감정들을 매우 섬세한 문장으로 풀어낸다. 그녀의 문장은 짧지만 밀도 있고, 감정은 절제되어 있지만 결코 무미건조하지 않다. 독자는 그녀의 문장을 읽으며 그 안에 숨어 있는 수많은 감정의 파장을 느낀다. 그것이 바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힘이다. 그녀는 드러내지 않고, 함축한다. 설명하지 않고, 암시한다. 그래서 그녀의 사랑 이야기는 더 잊히지 않는다.
현실로 돌아오다 – 그러나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소설의 후반부, 폴은 결국 시몽이 아닌 로제에게 돌아간다. 많은 독자들이 이 장면에서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다. 왜 그녀는 시몽과 새로운 인생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선택은 비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현실적인 것이었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나이가 있다. 폴은 그런 시점에 와 있다. 그녀는 자신이 시몽을 사랑했지만, 동시에 그 사랑이 자신의 삶을 지탱해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감정과 현실은 다르다. 그녀는 감정을 소중히 여겼지만, 결국 현실을 택했다. 그것이 삶이다. 그것이 ‘어른의 사랑’이다.
이 장면을 읽고, 나는 오히려 깊은 감동을 받았다. 사랑은 때때로 함께 하지 않음으로써 완성되기도 한다. 시몽과의 사랑은 비록 짧았지만, 폴에게는 다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함께 살아가는 시간보다 더 길게, 더 깊게 남는다.
이 소설이 내게 남긴 것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나는 오랫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 눈에 띄는 사건도, 강렬한 대사도 없지만, 이 소설은 내 마음을 툭툭 건드렸다. 마치 브람스의 선율처럼, 조용하고 느리지만 결코 단조롭지 않은 감정의 연주. 우리는 누구나 폴이 될 수 있고, 로제가 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시몽이기도 하다. 이 세 인물은 우리 안에 모두 존재한다.
사강은 사랑에 대해 찬란함이나 운명이라는 단어로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이란, 삶이라는 흐름 속에서 때로는 머무르고, 때로는 흘러가는 감정임을 말한다. 그것은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고, 때로는 끝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감정이 내 삶을 ‘조금 더 살아있게’ 만들었는가이다.
그 점에서 이 소설은 내게 진한 감정을 남겼다. 사랑이란 감정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다양한 감정이 결국엔 나를 나답게 만든다는 것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런 사랑의 클래식이다. 누구에게는 낡고 느릴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결코 잊히지 않을 선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