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는 '의욕 없음'이라는 바닥에 앉아 있었다.
무언가 특별히 잘못된 일도 없었는데 모든 게 무의미했고,
사람들과 만나면 더 지치고, 혼자 있으면 괜히 눈물이 났다.
마음은 무겁고, 생각은 멍했고, 몸은 늘 피곤했다.
그래서 정신과에 갔다.
의사는 ‘경도 우울증’이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한 알의 약을 처방했다.
“이거 드시면 좀 나아질 거예요.”
그것이 내가 처음 만난 ‘매직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요한 하리의 책 『매직필』을 읽게 되었다.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그래, 나도 그 약을 먹어봤어." 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매직필』 – 우울함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걸 알게 된 순간부터 회복이 시작됐다
요한 하리는 자신이 12년간 항우울제를 복용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살 충동이 있을 만큼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수많은 의사에게 "당신 뇌 안의 세로토닌 불균형 때문이에요" 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래서 약을 먹기 시작했고, 처음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효과는 줄었고,
용량은 늘어났고, 증상은 다시 돌아왔고, 무기력은 더 깊어졌다.
그는 묻기 시작했다.
“정말 우울증은 뇌 속 화학물질 때문일까?”
“우리가 복용하는 이 약들은 정말 과학적인 근거 위에 있을까?”
그리고 3년간 전 세계의 연구자, 의사, 과학자, 우울증 당사자들을 인터뷰하면서
그가 찾은 답은 이랬다.
“우울증은 뇌의 결함이 아니라, 삶의 결함일 수도 있다.”
'세로토닌 부족'이라는 신화
우리는 오랫동안 우울증을 ‘뇌의 화학적 이상’으로 배워왔다.
하지만 요한 하리는 이 책에서 “그 이론은 이미 과학적으로 부정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항우울제가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도움’은 근본적인 치유가 아니고,
많은 경우 ‘일시적인 감정의 조정’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대다수의 약물은 위약(placebo)과 비슷한 수준의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내가 고장났다’고 믿어왔다.”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나도 그랬다. ‘나는 너무 약해서, 무기력해서, 세상이 버거워서 병에 걸렸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이 책은 내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대, 무엇이 당신을 잃게 만들었나요?
『매직필』이 제시하는 우울증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 의미 없는 일터
- 단절된 인간관계
- 상실된 통제감
- 억압된 자아
- 트라우마
- 과잉 연결된, 그러나 깊이 없는 디지털 세상
즉, 우리는 우울할 만한 환경에서 우울해진 것뿐이라는 말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 ‘합리적인 감정 반응’을 병리화했다는 데 있다.
책의 원제는 『Lost Connections』다.
우울은 단절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단절된 인간관계, 삶의 의미, 공동체, 자연, 몸, 자아.
그리고 회복은 “다시 연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약 대신 필요한 건 ‘연결’
요한 하리는 대안적 접근법들을 소개한다.
- 커뮤니티 기반 활동
- 집단 농업 프로젝트
- 반려동물과의 유대
- 예술과 창작 활동
- 사회 구조 개선
물론 이 모든 것이 ‘매직필’처럼 즉각적인 효과를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천천히, 오래도록, 그리고 진짜로 사람을 회복시킨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도 조금씩 공감했다.
운동을 시작하고, 친구와 매일 통화하고,
SNS 사용 시간을 줄이고, 하루에 한 번 나무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감정 곡선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감성평 – 그 말 한마디가 나를 가볍게 했다
“우울한 당신은 고장 난 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사회가, 이 구조가 고장 났다.”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나에게 처음으로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생긴 것 같아서.
그리고 그때부터
‘나를 치료’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나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조금씩 옮겨가기 시작했다.
실용 정보 – 우울감과 싸우는 당신에게
- 사회적 연결을 늘려라
일상 속 수다, 자원봉사, 커뮤니티 참여. 단 한 사람과의 깊은 대화도 충분하다. - 몸과 자연과의 연결 회복
햇빛 쬐기, 걷기, 식물 돌보기. 자연은 감정을 재조정해준다. - 자신의 이야기 듣기
일기 쓰기, 감정 추적 앱, 사적인 대화. 이유를 언어로 풀어보자. - 디지털 디톡스
알림 끄기, 스마트폰 멀리하기. 자극보다 침묵이 마음을 치유한다. - 의미 찾기
자원봉사, 창작, 기여. 의미는 우울함의 해독제다.
독자에게 – 당신도 당신의 매직을 찾을 수 있어요
이 책은 “약이 틀렸다”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약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당신의 우울은 정상이자, 회복될 수 있다”는 신념을 전해준다.
혹시 지금, 약을 먹고 있음에도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약 없이도 이유 모를 우울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은 ‘해답’은 아니지만,
‘질문을 다시 정리할 수 있게 해주는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다.
마무리하며 – 나에게 ‘매직필’이란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매직필’이라는 단어가 다르게 들렸다.
이젠 알겠다.
나에게 진짜 마법 같은 변화는
한 알의 약이 아니라
한 번의 연결이었다는 것을.
- 오래 연락 안 하던 친구의 전화
- 혼자 듣던 노래의 가사
- 일기장 속 내가 쓴 솔직한 한 문장
- 공원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꽃
- 책장 속 이 책, 『매직필』
그 모든 것이
내 인생의 ‘매직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