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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예술과 삶 사이, 경계선 위

by rya-rya-day 2025. 4. 7.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책 관련 사진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책 사진

현대 사회에서 직업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을 넘어, 자기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그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아주 조용하고도 묵직하게 건네주는 책이다.

이 책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10년 넘게 경비원으로 일했던 패트릭 브링리가 쓴 자전적 에세이다. 단지 직장 생활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이 아니라, 인생과 예술, 죽음과 사랑, 일과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땐 ‘경비원? 미술관에서?’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책을 덮을 즈음엔 “이 사람만큼 예술을 깊이 이해한 이가 또 있을까”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예술과 삶 사이, 경계선 위

패트릭은 예일대 졸업 후 뉴요커 잡지에서 일하다가 동생의 병을 계기로 미술관으로 ‘도망치듯’ 이직한다. 화려한 커리어 대신 조용한 미술관 구석에서 작품을 지키는 일을 선택한 것이다. 이 결정은 그의 삶을 바꾸었고,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경비원은 감시자가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이며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점은, 작가가 미술관을 단지 ‘일터’가 아닌 ‘삶터’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하루에 수십 번씩 오가는 사람들, 그들이 남긴 말과 표정, 아이들의 웃음, 노인의 눈빛… 이 모든 것이 그에겐 풍경이자 예술이었다.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을 지켜보며, 그는 예술이 사람을 어떻게 위로하고 변화시키는지를 생생하게 기록한다.

한 문장, 한 장면마다 이 사람이 단순히 경비원이 아니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직업을 예술로 만든 사람’이었다.

예술은 멀리 있지 않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 중 하나로, 수천 년의 예술이 공존하는 장소다. 많은 이들이 이 미술관을 거대한 박물관 혹은 관광지로 여긴다. 하지만 패트릭의 시선은 다르다. 그는 이곳을 ‘사색의 정원’이라 부른다. 매일 아침 19세기 회화관을 돌며, 작품을 바라보며 시작하는 하루. 이런 삶이 정말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놀라움이었다.

작품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매우 섬세하고 사려 깊다. 그는 관람객들이 지나쳐버리는 미세한 디테일에 주목하고, 반복된 시간이 쌓아올린 감상의 층을 언어로 풀어낸다. 단지 미술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이 자신에게 어떤 울림을 주었는지를 담담히 고백한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집이 아닌, 일종의 ‘내면 여행기’처럼 느껴진다.

삶의 슬픔과 예술의 위로가 만나는 지점

이 책에서 가장 큰 감정의 파도는, 작가가 동생의 죽음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찾아온다. 가까운 가족의 상실은 누구에게나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작가는 그 고통을 피하지 않고,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다. 그는 작품들을 통해 고통을 들여다보고, 받아들이며, 결국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품는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 모두는 삶에서 ‘떠나는 사람들’을 경험하고, 그것을 어떻게든 이겨내려 한다. 이 책은 그런 슬픔 속에서도 ‘일상과 예술’이라는 단단한 구조물이 어떻게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지 보여준다.

작품을 보며 슬픔을 되새김질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다시 인간에 대한 희망을 회복하는 모습은 참 따뜻했다. 예술이 단지 위대한 화가의 산물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의해 완성된다는 진리를 느낄 수 있었다.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당신은 어떤 작품 앞에 오래 머무는가?

이 책을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내 안의 예술과 감상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미술관에 갔던가? 어떤 작품 앞에 한참을 서 있었던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패트릭은 우리에게 예술을 특별하게 느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소박한 순간—어린아이가 다비드 조각상 앞에서 엄지를 치켜드는 장면, 노부부가 함께 카라바조 앞에 서 있는 장면—을 통해 예술이 일상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아마 이것일 것이다.

예술은 특별한 장소에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 속에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독후감: 나도 나만의 ‘미술관’을 지켜야겠다

책장을 덮고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마치 나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한 바퀴 둘러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 깊었던 건, ‘나만의 예술’을 다시 찾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점이다.

내게도 일상 속 예술이 있다. 좋아하는 책, 매일 듣는 음악, 창밖의 나무, 아이의 웃음소리. 그것들을 진심으로 ‘지켜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꼭 미술관의 경비원이 아니어도, 누구나 자기만의 예술을 지키는 ‘경비원’이 될 수 있으니까.

이 책은 단순히 ‘일과 삶의 조화’를 말하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질문. 그리고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조용히 답했다.

나도, 나만의 예술을 지키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