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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뇌』 – 뇌가 걷는다고, 내 마음도 움직일 수 있을까?

by rya-rya-day 2025. 4. 17.

길 위의 뇌 책 관련 사진
길 위의 뇌 책 사진

길 위에 있을 때 나는 살아 있다고 느낀다.
한 발짝 한 발짝을 내디딜 때마다,
무언가가 정리되고, 무언가는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어떤 감정은 조용히 사라진다.

하지만 나는 ‘왜’ 그런지를 몰랐다.
그저 “걷고 나면 기분이 좀 나아져.”라고 말할 뿐.
그러다 정세희 작가의 『길 위의 뇌』를 만났다.

책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된 물음표 하나가 깨어나는 소리를 들었다.
“혹시 걷는다는 건, 뇌와 마음을 동시에 움직이는 작업이 아닐까?”

정신과 의사가 길 위에 섰을 때

정세희 작가는 정신과 의사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어떤 의학적 권위도 내세우지 않는다.
그녀는 ‘진료실 안’이 아니라,
‘거리와 광장, 골목과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스스로를 관찰한다.

책의 배경은 낯설지 않다.
서울역, 노량진, 강남, 을지로, 그리고 뇌의 ‘길’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뒷골목들.
우리는 그 익숙한 공간을 다시 걷게 된다.
단지 ‘발’이 아니라 ‘뇌’로.
단지 ‘눈’이 아니라 ‘감정’으로.

책의 제목처럼 이 책은 ‘도보 정신과 기록’이자
우리가 외면해온 사람들, 감정, 그리고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걸음의 철학서’다.

걷는 뇌, 깨어나는 감정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환자나 질병보다 ‘사람과 맥락’을 먼저 본다는 점이었다.

  • “뇌는 늘 움직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 “걷는다는 것은 뇌를 앞세워 삶을 정렬하는 일이다.”
  • “마음의 이상은 어쩌면 주변 환경의 정상이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

나는 이 문장들을 천천히 곱씹었다.
예전의 나는 슬플 때 집 안에 숨어 들었고,
불안할 때 가만히 멈추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움직여야 한다고. 나아가야 한다고. 걷는 것이 가장 오래된 처방이라고.

그 순간,
나는 그간 내가 거리에서 무작정 걸었던 날들을 떠올렸다.
눈물 나던 날, 카페 대신 정처 없이 길을 걷던 내 모습이
어쩌면 ‘무의식적인 치유’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길 위에는 진짜 이야기가 있다”

정세희 작가는 도보 정신과 의사답게,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 노량진 고시촌에서 만난 청년의 눈빛
  • 강남대로를 걷는 양복 차림의 ‘살아남은 자들’
  • 을지로에서 자취하는 무기력한 청춘
  • 서울역에서 끝없이 돌아다니는 노숙인

그들은 병명이 없고, 진단도 없지만,
누구보다도 깊고 복잡한 감정을 품고 살아간다.

“당신은 아픈 게 아니라, 무너진 곳에 놓여 있었던 거예요.”

이 말 한마디에 나는 속으로 울고 말았다.

실용 정보 – 정신과 의사가 알려주는 '도보의 치유력'

책에는 직접적인 처방이나 자기계발적 조언은 거의 없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진짜 도움이 되었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며 정리해볼 수 있었던 ‘걷기와 뇌, 감정의 관계’는 이렇다.

  1. 걷기는 전두엽의 활성화를 돕는다 – 집중력, 판단력, 감정 조절 기능이 다시 깨어난다
  2. 리듬 있는 움직임은 불안을 낮춘다 – 심박수를 안정시키고 자율신경계를 진정시킨다
  3. ‘정처 없음’은 오히려 감정 해소에 효과적이다 – 목적 없는 산책이 기억을 정리하게 한다
  4. 사람이 아닌 ‘공간’과의 관계도 감정을 지배한다 – 도시의 구조가 무의식을 건드린다

이러한 내용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내가 경험한 감정의 흐름과도 기막히게 맞아떨어졌다.

감성평 –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거리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책을 덮은 날, 나는 신발을 신고 동네 골목을 걸었다.
책 속에 나오는 을지로도 아니고, 서울역도 아니었지만
그 길 위에선 이상하게도 내 생각이 줄어들고,
몸과 마음이 조용히 동기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걷는 동안 나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멀리 있던 감정이 가까워지고,
모호했던 슬픔이 또렷해졌고,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나는 이 책을 '산책 같은 책'이라고 부르고 싶다.
빠르게 줄을 그으며 읽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멈춰서 문장을 바라보고,
나 자신을 바라보며 읽게 되는 그런 책.

독자에게 – 당신도 ‘길 위의 뇌’를 꺼내 들 수 있기를

혹시 당신도
이유 없는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다면,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더 외로움을 느낀다면,
가끔은 너무 말이 많고, 또 너무 말이 없어진다면—
이 책은 그런 당신을 위한 이야기다.

이 책은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라”는 말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말한다.

“지금 느끼는 그 감정은, 당신이 잘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일단, 걸어보세요.”
“정해진 목적지 없이, 오늘 당신의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요.”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길 위의 뇌』는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다정한 정신과 의사의 산책처방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