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고, 나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책을 덮었는데 오히려 나 자신이 열리는 기분.
『그대의 인생에 봄꽃 하나 심겠습니다』는 단지 감성적인 제목을 가진 책이 아니다.
말이 사라진 시대에, 다시 말로 사람을 안아주는 문장의 숲이다.
그리고 나는 그 숲 속을 천천히, 조용히 걸었다.
한 장 한 장, 나 자신을 보듬으며.
>『그대의 인생에 봄꽃 하나 심겠습니다』 – 한 줄의 문장이 마음에 꽃을 틔울 때
오평선 작가는 시인도 소설가도 아닌, ‘문장 수집가’처럼 보인다.
그는 세상에 흘러다니는 감정을 문장으로 붙잡아두는 사람이다.
이 책은 그런 그의 고요한 손끝에서 길어 올린 짧은 산문 혹은 감성 에세이들의 모음이다.
짧으면 3줄, 길면 1쪽을 넘기지 않는 이야기들 속에는
우리가 무심히 흘려보낸 계절, 말하지 못했던 감정,
혹은 그저 하루를 버텨내기 위한 다짐들이 들어 있다.
“힘들었던 날들은 꽃이 되기 위한 시간이었다.”
“그대, 오늘은 아무 일 없어도 괜찮습니다.”
이런 문장 앞에서,
나는 어깨를 내리고 잠시 숨을 고르게 된다.
책 전체에 흐르는 문체는 지나치게 꾸미지 않고, 그러나 담백하게 가슴을 건드린다.
아프다고 울부짖는 대신, 아픈 이를 가만히 어루만지는 듯한 말들.
그게 바로 오평선 작가의 언어다.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느끼게 한다
요즘 세상에는 '위로'라는 말이 참 많이 등장한다.
"당신은 소중해요", "다 잘 될 거예요", "괜찮아요."
하지만 그런 말들이 때론 피곤하고, 부담스럽고, 심지어 거짓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진짜 힘들 때는 "다 잘 될 거야"가 아니라
“지금 힘들지. 나도 그래”가 필요한 법이다.
오평선의 문장들은 그렇다.
위로를 ‘주려는’ 태도보다, 위로 옆에 ‘같이 있어주는’ 태도.
그게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품격이었다.
삶의 언저리에 핀 조용한 꽃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장면에서 나 자신을 발견했다.
실패 앞에서 허물어진 날,
사랑에 지쳐 스스로를 닫아버린 날,
희망 없이 하루를 지운 날,
그리고 그런 날을 ‘아무 일 없었던 날’이라 쓰고 넘어갔던 나.
“잘 버틴 하루도, 잘 살아낸 인생입니다.”
“우리는 계속 흔들리면서도 자라나는 나무입니다.”
이 문장들은 누군가의 ‘조언’이 아니다.
그건 나보다 조금 먼저 울어본 사람이
내 손을 잡고 “그 길, 나도 가봤어”라고 말해주는 느낌이다.
봄꽃 하나, 그건 ‘희망’이 아니라 ‘가능성’이었다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땐,
‘봄꽃’이라는 말이 조금은 진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봄꽃’은 단지 계절의 은유가 아니었다.
봄꽃은 끝내 피는 것이 아니라, 결국 스스로 심는 것이다.
즉, 이 책은 독자에게 '희망을 주는 책'이 아니라,
‘스스로 희망을 다시 꿈꿀 수 있는 여지’를 선물하는 책이었다.
“그대의 인생에 봄꽃 하나 심겠습니다.”
“그건 나 대신, 당신이 직접 심는 꽃이에요.”
“나는 그저 그 꽃씨를 당신 손에 쥐어줄 뿐입니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정말 손바닥에 보이지 않는 씨앗 하나를 쥐고 있는 느낌이었다.
글쓰기라는 따뜻한 기술
문학평론가의 시선으로 본다면,
이 책은 에세이 장르의 최근 경향을 잘 반영한다.
짧고 정제된 산문, 이미지 중심의 정서, 일상의 언어들.
그 속에서 저자는 ‘말이 닿는 거리’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요란하거나 과잉된 수사는 없다.
그 대신 필요한 말을, 꼭 필요한 시점에만 꺼낸다.
또한 이 책은 ‘작가의 고백’이 아닌,
‘읽는 이의 독백’을 자극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말하자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거울 삼아 나 자신을 읽게 되는 책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감성에세이를 넘어서,
치유적 글쓰기의 모범 텍스트로도 손색이 없다.
나만의 감성평 – 말 없는 위로는 오래 간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은 감성 글귀도 넘치고, 위로의 말도 넘친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말들이 피로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말을 앞세우지 않고, 침묵을 품고 있는 말들.
그래서 오히려 오래 남았다.
계속 다시 펼치게 됐다.
책갈피 없이도 기억나는 문장들이 생겼고,
SNS에 공유하지 않아도 내 마음에 남는 단어들이 생겼다.
이 책은 가슴을 울리기보다는,
가슴에 무언가를 조용히 놓고 가는 책이다.
그건 봄바람처럼 은은하고,
빗방울처럼 촉촉하고,
때로는 달빛처럼 쓸쓸하다.
하지만 결국엔 따뜻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 나도 누군가의 봄꽃이 되기를
『그대의 인생에 봄꽃 하나 심겠습니다』는
읽는 순간도 좋지만, 읽고 난 후의 시간이 더 좋다.
그건 이 책이 어떤 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질문을 품게 하는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내 안엔 어떤 씨앗이 자라고 있을까?”
“나는 누구의 인생에 봄꽃이 되어주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어떤 꽃을 허락하고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되새기며
나는 문득,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졌다.
“당신에게, 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건, 책 속 오평선 작가가 내게 해준 말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