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너무 밝은 날, 나는 늘 이 책을 떠올린다. 그리고 조용히 펴든다.
알베르 카뮈의 『결혼·여름』.
언제나 “겨울”을 배경으로 철학적 사유를 던지는 작가들 사이에서,
이토록 밝은 햇살 아래에서 삶을 응시하는 철학자는 드물다.
‘결혼’과 ‘여름’.
이 낱말들은 제목만으로도 따뜻하고 온화하다.
그러나 그 속엔 삶의 뿌리 깊은 비극을 직시하고도 끝내 삶을 사랑하려는 의지가 녹아 있다.
『결혼·여름』 - 나는 언제 삶과 결혼했는가
“태양과 바다, 그리고 무의식적 삶과의 결혼.”
그 말에 나는 멈춰 섰다. 삶과의 결혼.
내가 과연 삶과 결혼한 적이 있었던가?
나는 늘 무언가를 조건 삼아 사랑했고,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것을 배신이라 여겼다.
하지만 카뮈는 말했다.
“삶은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되는 것이다.”
『결혼·여름』은 논리로 삶을 구조화하지 않는다.
대신 태양빛을 맞는 피부, 바닷물에 젖은 발끝, 정오의 적막, 석양의 냄새로 삶을 그린다.
나는 그 감각들 속에서 내 삶의 원형을 다시 발견했다.
이 책은 철학 에세이이자, 감각의 일기장이다
『결혼·여름』은 카뮈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에 걸쳐 쓴
짧은 에세이 여덟 편을 담고 있다.
- <결혼>
- <티파사의 여름>
- <사랑과 여름>
- <알제의 바람>
- <알제에서의 죽음>
- <태양 아래 첫사랑>
그 어떤 편도 직접적으로 죽음이나 부조리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작품보다 죽음과 부조리를 깊이 응시한다.
왜일까?
그는 삶의 감각을 극대화함으로써, 오히려 죽음을 초월하려 한다.
그에게 태양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태양은 죽음과 맞서는 존재의 확증이다.
나의 감성평 – 나는 이 책에서 태양을 만졌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고, 낯선 환경에 쉽게 피로해지는 성격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카뮈의 글을 읽으면, 몸이 아닌 정신이 ‘어딘가로 떠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티파사의 여름>에서 묘사되는 태양과 바위, <사랑과 여름>에서 느껴지는 숨 막히는 오후, <알제에서의 죽음>에 스며든 쓸쓸한 감정까지.
그 모든 풍경들이 내 머릿속에 진짜 빛과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카뮈의 글은 감각이다. 더 정확히는 깊이 있는 감각의 철학이다.
그의 문장은 짧고 단정하며, 한 줄 한 줄이 삶에 대한 겸허한 무릎 꿇음 같다.
삶을 사랑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백이 필요한가
『이방인』의 뫼르소는 삶을 ‘무감하게’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그는 살인 후조차 후회를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혼·여름』의 카뮈는 다르다.
그는 삶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강하게 ‘예’라고 외친다.
“나는 무엇에도 절망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절실히 받아들인다.”
이 말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구절이다.
삶은 나를 수없이 지치게 했고, 나는 수없이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카뮈는 내 어깨를 붙잡고 말하는 듯했다.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이 여름의 태양을 같이 보자.”
작가에 대해 – 알베르 카뮈, 부조리 속의 맑은 영혼
많은 사람들이 카뮈를 실존주의 작가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는 자신을 그렇게 불렀던 적이 없다.
카뮈는 부조리의 철학자였다.
즉, 세계는 본래 의미가 없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자 애쓰는 인간의 노력은 ‘충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그 충돌을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삶을 택하자고 말한다.
『결혼·여름』은 그 선언의 시작점이다.
실용 정보 – 『결혼·여름』을 읽는 다섯 가지 방법
- 한 편씩 천천히 읽기 (산문시처럼)
매일 한 편씩 아침 햇살 아래서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 문장을 소리 내어 읽기
카뮈의 문장은 입을 통해 나올 때 가장 빛납니다. - 자신의 감각을 기록해보기
‘내가 기억하는 여름의 빛은 어떤가’를 떠올려 보세요. - 『이방인』이나 『시지프 신화』와 병행 읽기
철학과 감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더 깊이 체감할 수 있습니다. - 계절에 맞춰 다시 읽기
봄에는 ‘결혼’, 여름엔 ‘여름’을 다시 꺼내 읽는 것도 좋습니다.
독자에게 – 당신은 지금, 삶과 결혼했나요?
우리는 종종 인생을 거부합니다.
너무 피곤하거나, 너무 슬프거나,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을 때.
그럴 때 이 책은 속삭입니다.
“삶이 뭔지 몰라도 괜찮아요.
그냥 오늘의 햇살을 느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삶을 반드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 결혼은 누군가와의 서약이 아니라, 나와의 약속이다
『결혼·여름』을 읽고 나서 나는 나와 결혼하고 싶어졌다.
나의 외로움과, 나의 눈물과, 나의 소박한 기쁨과.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살아 있는 나’에게.
“내가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을 때조차,
나 자신을 믿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 내 마음속의 후기